“신부님은 멀리 계셔도, 우리는 여전히 함께 기도합니다.”
이름 없는 사목자, 그 조용한 발걸음
도심의 본당처럼 성가대와 전례팀이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화려한 강론이나 다양한 모임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시골 공소 안에는 여전히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숨결이 살아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누군가의 이름 없는 헌신이 있습니다.
바로 ‘공소 회장님’이라 불리는 이들입니다.
많은 이들이 신앙생활의 중심을 ‘미사’에 두지만, 공소처럼 사제가 상주하지 않는 곳에서는 신자들이 스스로 예절을 준비하고 공동체를 유지해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일을 ‘직업도 아닌데’, ‘보수도 없는데’, 매일같이 감당하는 이가 바로 공소 회장입니다.
그분의 하루는 단순한 반복이 아닙니다. 그것은 신앙을 행동으로 살아내는 평신도 사목의 진짜 모습이자, 교회의 미래가 향하는 방향을 조용히 보여주는 실천입니다.
1. 하루의 시작은 기도와 방문에서 시작
공소 회장님의 아침은 일반적으로 그저 평범하게 시작되지 않습니다.
작은 성경책을 펴고 하루의 말씀을 묵상한 뒤,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바로 마을 어르신들입니다.
“오늘 기도회에 나오실 수 있을까?”
“어제는 무릎이 많이 불편하시다던데…”
전화 한 통, 안부 인사 한번이 그분의 ‘사목 활동’입니다.
공소에 도착하면 직접 성상을 닦고, 제대 위 꽃을 정리하며 성가 책자도 준비합니다. 그리고 여기저기 먼지도 닦고, 쓰레기도 버리고.....
미사는 없지만, 오늘도 하느님을 만나려는 준비는 변함없이 이루어집니다.
이처럼 하루를 기도와 돌봄으로 여는 회장님의 모습 속에서, 신앙은 더 이상 개념이 아닌 삶이 됩니다.
2. 회장님은 조용히 일하는 '신앙의 허리'입니다
공소 회장님의 역할은 단순히 예절을 인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사기 앞에서 주보를 뽑고, 고장 난 보일러를 손보고, 어르신들께 성경 말씀을 읽어드리며, 공소 전체를 책임지는 ‘신앙의 허리’ 역할을 감당합니다.
사제가 없는 자리에서, 평범한 평신도가 그 공백을 사랑과 믿음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그분은 말씀 전례 중 복음을 낭독하고 짧은 묵상도 준비합니다.
전례 중 어색함이 흐를 때에도, 그 침묵을 두려워하지 않고 묵주기도로 마음을 모읍니다.
그 모습은 설교보다 더 큰 설득력이 있고, 사제의 옷보다 더 무게 있는 헌신으로 다가옵니다.
3. 성체는 없어도, 공동체는 살아있다
공소예절은 성체성사가 없는 예식이지만, 그 안에는 살아있는 공동체의 숨결과 기도의 열매가 담겨 있습니다.
공소 회장님은 이러한 공동체의 ‘심장’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기도가 끝난 후, 회장님은 따뜻한 차를 나누며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고, 병중에 있는 교우에게 방문 계획을 세웁니다.
또 다음 주일 예절 준비와 성가 연습을 함께 하며 공동체를 이끌어갑니다.
사제가 오지 않아도 “우리는 여전히 교회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회장님의 조용한 헌신과 희생과 사랑 덕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