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가난 속에서 피어난 신앙, 라틴아메리카의 공소
브라질의 외곽, 멕시코의 산골 마을, 페루의 고산지대…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지역에는 여전히 사제가 상주하지 않는 교회, 즉 **‘공소(Chapela)’**가 수없이 존재합니다.
넓은 대지와 열악한 도로 사정, 빈곤과 정치적 불안정으로 인해 본당 신부님이 모든 지역을 다 돌보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소공동체 기반의 공소 사목은 이 지역 신앙의 실질적인 근간이 되고 있습니다.
공소는 이곳 사람들에게 단지 기도하는 곳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이를 키우고, 장례를 치르고, 슬픔을 나누고, 희망을 품는 ‘삶의 중심’이자 신앙과 공동체가 연결되는 가교입니다.
2. 평신도가 교회의 심장이 된 현장
라틴아메리카의 공소 사목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평신도 지도자’들의 활약입니다.
신부님이 한 달에 한두 번만 방문할 수 있는 조건 아래, ‘카테키스타(catequista, 교리교사)’, ‘공소 사목회 회장’, **‘지역 전도자’**와 같은 평신도들이 지역 공소를 책임지고 운영합니다.
이들은 특별한 신학 교육을 받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삶 속에서 체득한 신앙과 공동체 사랑으로 공소를 지켜냅니다.
매주 토요일엔 공소예절이 열리고, 주일마다 아이들을 위한 교리 교육이 진행됩니다. 아픈 이웃을 방문하여 함께 기도하고, 마을 문제에도 앞장서며 공동체를 이끌어 갑니다.
"신부님은 멀리 있어도, 하느님은 우리 곁에 계십니다."
이는 멕시코 어느 공소 지도자의 말입니다. 이 짧은 문장 안에, 공소 사목의 정수가 담겨 있습니다.
3. 신앙이 삶을 감싸안을 때: 라틴아메리카 공소와 ‘해방의 신앙’
브라질 북쪽 시골 마을의 한 공소에서는, 매주 성경 말씀을 나누는 모임이 열립니다.
처음에는 기도만 나누던 자리였지만, 시간이 지나며 “왜 우리는 학교가 없을까?”, “우리 마을엔 왜 수도가 끊길까?”라는 질문들이 자연스럽게 나왔습니다.
이후, 신자들은 마을회관에 글자를 모르는 어르신들을 위한 ‘읽기교실’을 열었고, 아이들을 위해 공소 마당에 책꽂이를 만들었습니다.
기도는 그대로였지만, 삶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과테말라의 어느 공소에서는, 함께 기도하던 이들이 작은 농업 협동조합을 만들었습니다.
땅을 나누고, 작물을 함께 심고, 수익도 공정하게 나누는 삶.
신앙은 더 이상 ‘일요일만의 일’이 아니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이어지는 희망의 실천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라틴아메리카의 공소에서는 신앙이 단지 하늘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땅을 딛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더 따뜻하게, 더 사람답게 바꾸는 힘이 됩니다.
4. 한국 교회에 전하는 조용한 울림
라틴아메리카의 공소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신부님과 미사 중심의 구조를 넘어, 모든 신자가 주체가 되는 교회, 함께 사는 삶 안에서 피어나는 신앙, 작지만 강한 공동체의 힘은 오늘날 많은 이들이 ‘신앙의 본질’을 다시 묻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기억할 것은, 공소는 단지 ‘없는 것의 대안’이 아니라, 가장 원형적인 교회의 모습이라는 점입니다.
거기엔 프로그램보다 사람, 성직보다 관계, 가르침보다 나눔이 먼저입니다.
맺음말: 가장 작은 자리에서 시작된 교회의 회복
라틴아메리카의 공소 사목 현장을 보면, 진정한 교회란 어디서 시작되는가에 대한 깊은 성찰이 생깁니다.
높은 제단이 없어도, 완벽한 교육이 없어도,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손잡는 사람들이 있는 곳엔 이미 교회가 존재합니다.
그 공소의 조용한 기도 소리, 묵묵히 교리를 전하는 평신도의 목소리, 아이들이 웃으며 모여드는 마당…
이 모든 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말합니다.
“신앙은 특별한 곳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당신의 삶 속에서 피어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