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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복을 직접 손바느질하는 할머니

by mcstory7 2025. 5. 21.

성당을 다니다 보면 성가대의 목소리, 제대 위 촛불의 흔들림,

주일마다 다른 꽃꽂이처럼 눈에 띄는 것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잊지 못할 풍경은,

늘 조용히,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의 손끝으로 이어지는 기도입니다.

우리 본당에는 미사복을 손바느질로 지어주시는 할머니 신자 한 분이 계십니다. 흰머리가 가득한 할머니는 지난 30년간 성탄절 미사복, 어린이 세례 예복, 부활절 제대보까지 모두 혼자 바느질해오신 분입니다.

그분의 바늘 끝에는 단순한 실이 아닌, 기도와 기억, 그리고 깊은 신앙의 시간이 꿰매어져 있습니다.

동정마리아 이기예수 동상

1. 미사복 한 벌에 담긴 사계절의 시간

신부님 미사복 고칠 때는 손이 많이 가요. 그냥 옷이 아니거든요.”

나는 어느 날, 사제관 옆 작은 작업실에서 할머니의 손길을 처음 보았습니다. 작업실이라고 해도 특별한 건 없었습니다.

헌 바느질 상자, 오래된 재봉틀,그리고 창가에 놓인 뜨거운 차 한 잔.

그 곁에 앉은 할머니가 흰 천을 무릎에 펼쳐 들고 계셨습니다.

이 천이 너무 얇아서 손으로 해야 해요. 기계로 박으면 망가져요.”

말씀하시며, 할머니는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이어가셨습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힘들진 않으세요?”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으셨습니다.

몸은 힘들지. 그런데 이게 기도 같아.

주님, 이 옷 입고 미사 잘 드리게 해주세요,

그런 마음으로 하다 보면 괜찮아져요.”

그 말씀을 듣고 보니,

할머니 손등에 자리한 굳은살이 전혀 거칠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건 오래 기도한 사람의 손, 봉헌의 손이었습니다.

 

2. 아무도 몰랐던 헌신, 그러나 누구보다 가까운 사랑

할머니가 미사복을 지은 건 30년도 넘은 일입니다.

처음엔 신부님이 성탄절 전날 갑자기 어린이 세례복이 없다고 하자

직접 천을 사서 밤새 꿰매드린 게 시작이었다고 합니다.

그 뒤로 누가 시킨 것도, 누구에게 보답을 받은 것도 아니지만

매년 제대보, 전례복, 묵주보 자락 하나까지할머니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복 많이 받아요?” 하고 누군가 물으면

복이요? 글쎄요... 그냥 조용히 살지요.” 하시며 웃습니다.

하지만 신자들은 다 압니다.매주 단정하게 정돈된 제대보, 세례식 때마다 새하얗게 빛나는 아이들의 옷,그리고 매년 부활절 새벽, 하늘색 미사복 사이로 번지는 은은한 장미 무늬 자수까지.그 모든 것은 할머니의 기도이자 사랑의 흔적이라는 걸요.

 

3. 바늘과 실, 그리고 하느님과의 대화

할머니는 혼자 계십니다.

남편은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고, 자녀들도 타지에 있습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늘 밝으십니다.

그 비결이 무엇일까 생각하다, 어느 날 들은 말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외롭다고 느낄 틈이 없어요.

이걸 하고 있으면... 바늘 들고 기도하면서 하느님이 내 옆에 앉아계신 것 같거든요.”

그 말을 듣고 난 뒤부터는 할머니의 바느질 소리가 마치 성가처럼 들리기 시작했습니다.실이 옷감을 통과하는 소리, 매듭을 짓는 손놀림,그 모든 순간이 조용한 예배처럼 느껴졌습니다.

 

마무리: 미사복보다 빛나는 사람

우리 본당 제대 위에 놓이는 미사복은 언제나 깨끗하고 정갈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귀한 건, 그 옷을 꿰맨 할머니의 마음과 손길입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이어지는 신앙, 화려하진 않지만 깊고 단단한 헌신. 바로 그 안에서 우리는 진짜 믿음의 향기를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도, 할머니는 작은 방 한켠에서 바늘을 들고 계십니다.

아마 그 손끝에선, 또 하나의 기도가 조용히 피어나고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