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감자 싹이 났어요!”
교리가 끝나고 한 아이가 소리치며 뛰어오던 그날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성당 마당을 돌고 돌아서 예배당 뒤편으로 가보니, 정말 한 줄, 두 줄 초록빛으로 빛나는 감자 싹이 땅을 박차고 나오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햇볕이 따뜻하게 내려앉아 아직 물기가 있는 흙 위로
마치 손가락처럼 쏙쏙 올라온 감자싹들이 한껏 웃고 있었습니다.
그날은 그냥 밭을 한 바퀴 둘러본 것 뿐이었지만,
왠지 마음이 꽉 찬 느낌이 들었습니다.
무언가를 심고, 자라고, 기다린다는 것 자체가
이 공동체에게는 작은 기적 같았거든요.
1. 감자를 심던 날, 삽질보다 많았던 웃음소리
햇살이 따뜻하게 퍼지던 오후 어느 날.성당 마당 한쪽에 있던 잡초 가득한 땅을 정리하고,본당 신부님과 신자들이 함께 감자심기를 시작했습니다.
누군가는 호미질이 익숙했고, 누군가는 도시에서 처음 삽을 잡아본 얼굴이었습니다.
신부님은 낡은 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직접 삽을 들고 앞장섰습니다.
“이 땅이 얼마나 좋은 땅인지 봐요. 딱딱하지도 않고, 숨도 잘 쉬잖아요.”
누군가가 감자를 반으로 자르며 물었습니다.
“신부님, 감자도 복음처럼 나눠 심는 건가요?”
신부님은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잘 나눈 감자가 더 많이 열려요. 복음도 그렇죠.”
그날의 감자심기는 농사가 아니라 거의 작은 축제 같았습니다.
흙 묻은 손으로 물도 나눠 마시고,
땀이 송글송글 맺히는 이마를 손등으로 닦아가며
“이거 다음엔 고구마도 해보자”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그 순간엔 누구도 바쁘지 않았고, 모두가 똑같이 한 줄의 감자 싹을 상상하고 있었습니다.
2. 매주 눈으로 확인하는 믿음의 싹
그 이후로 아이들은 매주 밭에 들렀습니다.
교리 수업이 끝나면 한 명씩 고개를 내밀고,
“오늘은 감자 얼마나 컸어요?” 하고 물어보곤 했죠.
비가 온 다음 주일엔 흙냄새가 더 짙었고,
바람 부는 날에는 감자잎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들릴 만큼 잎이 무성했습니다. 어르신 신자들은 종종 밭을 살피러 오셨고,
가끔은 누군가 몰래 김도 매주고 물도 주고 가셨습니다.
누가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밭을 돌보는 마음이 기도처럼 퍼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번은 신부님이 밭 앞에 쪼그려 앉아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셨습니다.
“감자도 이렇게 잘 자라는데, 우리도... 괜찮겠죠?”
그 말에 옆에 있던 할머니 한 분이 조용히 대답하셨습니다.
“사람도, 감자도... 가만히 두면 잘 자라는 법이죠.”
그 말을 들으며, 나는 한참을 말없이 감자잎을 바라봤습니다.
우리가 키우는 건 감자인지, 그걸 지켜보는 우리 마음인지,
그 경계가 점점 희미해져만 갔습니다.
3. 수확의 기쁨, 나눔의 미사
감자는 땅 위에선 그 흔적조차 보이지 않지만, 그 속에서는 조용히 자라고 있었습니다. 매일 들여다본다고 바로 보이는 건 아니지만, 그건 분명히 자라나고 있었죠. 믿음도, 참 그렇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말로 확인하지 않아도, 누군가의 기도 속에서, 누군가의 땀방울 속에서 조금씩 자라나고 있습니다.
본당 밭에서 자란 감자들은 식탁 위로 올라왔고, 나눔의 기쁨이 되었고,
무언의 기도와 함께 제대 곁에 놓였습니다. 그리고 그 밭을 바라보던 사람들의 마음에도 조용히 무언가가 싹텄습니다.
그것이 감자였는지, 믿음이었는지는 지켜보는 사람의 마음 안에 남아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