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삶이 완전히 바뀌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지만, 단 하나의 순간이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기도 합니다. 태국의 한 남성은 어린 시절부터 불교 사원에서 자라며 수행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고요한 명상과 규칙적인 일상 속에서 진리를 찾아 헤매던 그는, 어느 날 전혀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랑’이라는 새로운 깨달음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그를 가톨릭 사제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종교를 바꾼 한 사람의 선택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정직하게 마주하고,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연 진짜 변화의 기록입니다.
1. 스님의 길, 침묵 속에서 길을 찾다
‘파차라’라는 이름을 가진 소년은 태국 북부의 산골 마을에서 자랐습니다. 어릴 적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먼 도시로 떠났습니다. 그가 의지할 곳은 동네 사원이었습니다. 늘 조용하고 따뜻했던 스님들의 말투, 향 냄새가 감도는 새벽 공기, 맨발로 걷는 탁발 행렬 속에서 파차라는 세상의 시끄러움 대신 침묵의 평안을 배우며 자랐습니다.
열다섯이 되던 해, 파차라는 정식으로 출가해 스님이 되었습니다. 하루는 새벽 4시에 시작됐고, 명상과 경전 암송, 탁발과 정좌 수행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는 수행을 통해 욕망에서 벗어난 자유, 고통을 뛰어넘는 깨달음을 추구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는 자신 안에 쌓여가는 공허함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누구이며, 왜 수행하고 있는가?”
그 질문은 점점 커졌고, 아무리 깊이 명상해도 그 답은 오지 않았습니다. 수행은 계속되었지만, 마음 한구석은 차갑고 허전했습니다.
그는 깨달았습니다. 마음속 질문이 멈추지 않는 이상, 그 자리에서는 진짜 평화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2. 낯선 기도에서 들려온 따뜻한 목소리
스님으로서의 삶에 잠시 쉼표를 찍은 파차라는 방콕의 한 사회복지기관에서 봉사활동을 하게 됩니다. 그곳은 가톨릭 수녀들이 운영하던 무료 진료소였습니다. 처음엔 모든 것이 낯설었습니다. 성모상이 놓인 방, 손가락을 맞대어 기도하는 사람들, 그리고 ‘하느님’이라는 이름. 그에겐 너무도 다른 세계였습니다.
하지만 그 낯섦 속에서 이상하게도 마음이 끌리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중환자실에서 작은 아이가 고열로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파차라는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았고, 한 신부가 그 곁에 다가가 조용히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부드럽고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느님, 이 아이를 안아주세요.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당신께 맡깁니다.”
그 순간, 파차라는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그 신부의 표정은 절박하면서도 평온했고, 기도는 명상이 아닌 진심어린 의탁처럼 들렸습니다. 말도 많지 않았고, 특별한 행위도 없었지만, 그 짧은 순간 안에 파차라는 그동안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경험했습니다.
누군가를 향한 온전한 사랑과 수용, 그리고 그를 감싸는 무언가 따뜻한 울림.
그날 이후 파차라는 매일 아침 진료소 한켠에서 기도 소리를 조용히 듣곤 했습니다. 마치 그 목소리들이 자신 안의 빈 공간을 하나씩 채워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3. 믿음의 재탄생, 사랑으로 완성된 사명
파차라는 1년 넘게 고민과 기도를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조심스럽게 세례를 받고 새로운 이름 ‘요한 파차라(Johann Pachara)’로 거듭났습니다. 그의 결정은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큰 반대를 받았지만, 그는 담담히 말했습니다.
“나는 불교를 버린 것이 아니라, 그 위에 사랑을 더했을 뿐입니다.”
그는 이후 신학교에 입학하여 가톨릭 신학을 공부하고, 몇 년 뒤 정식으로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이제 그는 태국의 작은 공동체에서 사람들의 상처를 보듬고, 종교를 넘어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현장 사목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요한 파차라는 자신을 두 종교 사이의 다리가 되고 싶다고 말합니다.
불교의 수행과 가톨릭의 사랑이 함께 흐를 수 있음을 몸소 증명해주는 그의 존재는, 많은 사람들에게 종교보다 중요한 건 결국 ‘어떻게 사랑하느냐’는 질문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결론: 변화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누군가는 그를 배신자라 부를지 모릅니다. 또 누군가는 믿음 없는 회심이라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요한 파차라 신부는 묻습니다.
“사람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면, 그것이 진짜 신앙 아닌가요?”
한 남성의 전환기는 단지 종교를 옮긴 사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을 돌아보고, 타인의 아픔에 다가서며, 세상을 더 따뜻하게 바라보게 된 여정이었습니다.
신앙이란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나아가는 것임을. 그리고 사랑은 결국, 우리를 가장 진실한 길로 이끄는 힘임을 그의 삶이 증명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