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에 보이진 않아도, 여전히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신앙의 기억
“여기, 원래 공소였어요. 어르신들이 모여 매주 예절도 드리고 성경공부도 하던 곳이죠.”마을 어귀에 남겨진 허름한 건물을 가리키며 어느 동네 분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습니다.문은 닫혀 있었지만, 그 안엔 누군가 오래도록 기도했던 자취가 느껴졌습니다.마치 아직도 누군가 자리에 앉아 묵주를 굴리고 있을 것 같은 그런 공간이었죠.
1. 불이 꺼진 공소, 그러나 완전히 꺼지진 않았습니다
예전에는 시골 어느 마을을 가도 하나쯤은 공소가 있었습니다.작은 간판 하나, 하얀 십자가, 그리고 늘 열려 있던 문.평일 낮에도 혼자 와 기도하던 할머니, 주일이면 예절을 준비하던 동네 아주머니들…그런 풍경이 참 익숙했죠.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젊은이들이 떠나고, 마을이 비워지면서 공소도 하나둘씩 문을 닫고 있습니다.예전엔 북적이던 공간이 지금은 조용한 빈집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말 그 안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까요?아니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그 자리에 머물렀던 기도와 눈물, 웃음과 다정한 인사말들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보이지는 않지만, 사라지지 않은 것들이 있거든요.
2. 그 자리에 머물던 사람들의 믿음
공소는 단지 예배를 드리던 공간이 아니었습니다.누군가의 결혼을 함께 축하했고, 누군가의 상을 함께 울어줬던 곳이었습니다.이웃이 힘들 때 서로 음식 한 그릇 나누고, 아이들이 성경책을 읽고 웃던 공간.그 모든 것이 공소라는 말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로 남아 있습니다.
제가 아는 어느 공소 회장님은 마지막 날 이렇게 말씀하셨어요.“이제 이 공간은 닫지만, 여기서 했던 기도는 하늘에 남아 있을 거예요.”그 말을 듣고 마음이 찡했습니다.공소가 문을 닫는다고 해서, 그 믿음까지 닫히는 건 아니니까요.
3. 건물보다 소중한 것은, 그 안에 살았던 시간
우리는 가끔, 건물을 지키는 게 신앙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물론 공간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그 공간을 채웠던 삶과 이야기입니다.
공소에서 있었던 기억들을 모아 기록으로 남기면 어떨까요?사진 몇 장, 신자분들의 인터뷰, 그때 불렀던 성가 한 소절만 남겨도다음 세대에 전할 수 있는 깊은 울림이 될 겁니다.
그게 책 한 권이든, 짧은 영상이든, 아니면 마을 게시판에 붙은 작은 이야기 한 편이든…우리가 그것을 잊지 않고 기억하려는 마음이야말로, 신앙의 흔적을 지키는 첫걸음이겠지요.
4. 마무리하며: 닫힌 문 너머에도 남아 있는 따뜻함
공소는 지금 이 순간에도 조용히 사라지고 있습니다.하지만 그 안에서 태어난 기도, 손잡고 나눈 사랑, 그리고 작게 들리던 “아멘”의 소리는우리 안에 분명히 남아 있습니다.
신앙은 반드시 큰 성당 안에서만 자라는 게 아닙니다.때론 가장 작은 공간, 가장 소박한 자리에서 더 깊고 단단하게 자라납니다.
그 공소가 있던 자리에 다시 불이 켜지지 않더라도,그곳에서 피어났던 믿음은, 우리가 잊지 않는 한 꺼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