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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가 없어도 멈추지 않은 신앙

by mcstory7 2025. 5. 19.

신부님은 언제 오시나요?”몇 년 전, 강원도 깊은 산골에서 들은 질문입니다. 그 마을엔 사제가 오지 않은 지 벌써 5년이 넘었다고 했습니다. 처음엔 나도 놀랐습니다. 미사도 없고, 성체도 모시지 못하는데어떻게 신앙이 이어질까 싶었죠.

그런데 그곳 공소에 머무는 동안, 나는 기적이란 단어를 실감했습니다. 신부님 없이도, 아니 어쩌면 신부님이 없기에 더 단단해진 공동체. 조용하지만 강한 믿음의 힘이 거기 있었습니다.

욕지도 성모상 사진

 

1. 누군가는 반드시 그 자리를 지킨다

작은 공소 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깨끗하게 정돈된 제대와 정성스레 꽂힌 성경책입니다.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닙니다. 동네 아주머니 한 분이, 매일같이 와서 청소를 하고, 촛불을 켜고, 묵주기도를 준비합니다.

"신부님은 못 오셔도, 하느님은 매일 오시잖아요."

그 말이 참 깊이 남았습니다. 미사가 없어도, 성체를 모시지 못해도, 신앙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숨 쉬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건 유지라기보단, 지속된 창조에 가깝습니다.

 

2. 이름 없는 손길들이 만든 우리 교회

신부님은 안 계셔도, 우리끼리라도 예배는 드려야죠.”처음엔 다들 조심스러웠다고 합니다. ‘우리가 예절을 준비해도 될까?’, ‘실수하면 어쩌지?’ 그런 마음이었죠.

하지만 누군가 용기를 냈고, 또 다른 누군가가 함께 하겠다고 손을 들었습니다.그렇게 시작된 도시 외곽의 작은 공소에서는 지금도 평신도들이 돌아가며 공소 예절을 준비하고, 성경 말씀을 나눕니다.

누구 하나 대단한 신학 지식을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읽는 속도가 느린 분이 있으면 기다려주고, 말씀이 어렵게 느껴지면 자신의 경험과 연결해서 풀어냅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저는 이 구절 읽으니까 우리 막내랑 다퉜던 날이 생각났어요그날 제가 참지 못하고 마음을 닫았었거든요.”

이렇게 조심스러운 고백이 나오면, 그걸 듣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신앙은 그 순간, 교리가 아니라 삶이 되어 흐르기 시작합니다.

이 공소에선 누가 대표다, 누가 리더다 하는 말이 거의 없습니다.대신 이번 주엔 내가 먼저 나서볼게요’, ‘다음엔 당신이 말씀 나눠줘요하는 식으로 서로가 서로를 이끌며 교회를 만들어갑니다.작지만 살아 있는 교회, **이곳 사람들 손으로 짓는 진짜 우리 교회’**입니다.

 

3. 말없이 자란 복음의 씨앗

공소가 외롭게 느껴질 거라 생각했다면, 아마 여길 오래 보지 못한 사람일 겁니다.이곳은 묵묵히 기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소리 없이 신앙이 자라나는 자리입니다.

특히 코로나로 본당 미사가 중단되었던 시기, 많은 이들이 공허함을 느꼈습니다.하지만 이 공소는 오히려 그때 더 단단해졌습니다.

우리, 각자 집에서 같은 시간에 묵주 들자.”그 한마디에 신자들이 다시 마음을 모았습니다.누구는 혼자 부엌 식탁에서, 누구는 아픈 남편 곁에서, 또 어떤 이는 자녀와 함께같은 시간, 같은 기도로 연결된 공동체가 만들어졌습니다.

그 시기, 한 청년이 조심스럽게 공소 문을 열었습니다.사람들이 왜 여기서 기도하는지 궁금했어요.”그 청년은 말없이 앉아 있다가, 어느 날 작은 종이 쪽지를 남겼습니다.여기 오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저도 기도 시작해볼게요.”

그때 공소 회장님이 웃으며 말하셨죠.하느님은 우리가 바쁠 때도, 못 본 척하지 않으시더라고요.”

이 공소에서 복음은 그렇게 크게 외치지 않아도, 조용히 자라나고 있었습니다.말보다 삶이 먼저 움직이고, 전도보다 환대가 먼저 다가가는 이곳에서, 신앙은 조용히 꽃을 피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