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실이를 처음 본 건 어느 맑은 주일 아침이었습니다.
성당 입구 돌계단 한쪽에 하얀 털뭉치가 동그랗게 누워 있었어요.
처음엔 웬 인형인가 했죠.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자 고개를 들더니 꼬리를 살짝 흔들더군요.
“복실이예요.”
옆에서 지나가던 자매님이 말해주셨습니다.
“성당 마당 지키는 우리 강아지예요. 신부님보다 먼저 와요.”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미사에 올 때마다 저도 모르게 복실이부터 먼저 찾게 된 게.
1. 아침마다 제일 먼저 오는 친구
복실이는 정말 일찍 옵니다.
해가 겨우 떠오를 무렵이면 벌써 성당 마당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어요.
현관 앞 돌계단 옆이나, 나무 그늘 밑, 혹은 성모상 아래.
자리를 바꿔가며 사람들을 지켜봅니다.
교우들이 하나둘 도착할 즈음,
복실이는 고개를 들어 다가오는 사람을 한 번씩 바라봅니다.
익숙한 얼굴이면 꼬리를 천천히 흔들고,
아이들이 다가오면 얌전히 앉아 등을 내어주죠.
어르신 한 분은 주일마다 삶은 달걀을 챙겨옵니다.
껍질을 까서 손바닥 위에 올려주면,
복실이는 얌전히 물고 뒤로 가서 조용히 먹습니다.
달라고 조르거나 먼저 달려드는 법이 없습니다.
기다릴 줄 아는 강아지, 그게 참 신기하죠.
“복실이는 사람보다 낫다니까.”
성가대 자매님이 웃으며 하신 말씀인데,
그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복실이는 늘 그 자리에 앉아
사람들을 맞고, 기다려주고, 함께 있어줍니다.
2. 복실이의 기도 방식
누군가 복실이에게 “얘는 기도 안 해요?”라고 물으면
신부님은 늘 같은 대답을 하십니다.
“얘는 눈으로 기도해요. 하루 종일.”
복실이는 말이 없지만, 많은 것을 말합니다.
몸을 부비며 위로를 주고,
낯선 방문객이 오면 조심스럽게 주위를 맴돕니다.
아이들이 다가와도 짖거나 피하지 않고,
어르신들이 가까이 오면 그 옆에 조용히 앉아 있습니다.
어느 날, 본당 사무장님이 그러셨어요.
“복실이는 사람 마음을 참 잘 알아요.
하느님이 보내신 위로 같달까?”
그 말을 듣고 나서부터는
복실이가 마당에 조용히 앉아 있는 모습이
그냥 강아지의 모습이 아니라,
기도하는 누군가의 모습처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3. 비 오는 날, 가장 먼저 와 있던 아이
기억나는 날이 있어요.
장대비가 내리던 어느 주일 아침이었죠.
길도 미끄럽고, 신자들도 하나둘 늦게 도착하던 그날,
저는 혹시 복실이는 안 왔을까 싶어 먼저 마당을 둘러봤어요.
그런데, 복실이는
성당 현관 옆 처마 밑에 조용히 앉아 있었습니다.
온몸이 젖어 있었지만,
어느 때처럼 등을 꼿꼿이 세우고
문 쪽을 바라보며 자리를 지키고 있더군요.
신부님이 “복실아, 안에 들어와.” 하고 불러도
복실이는 꼼짝하지 않았어요.
그 모습이 어찌나 듬직하고 애틋하던지요.
그날 이후로 저는
“복실이는 성당 마당을 믿음으로 지키는 친구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누구보다 먼저 와서,
아무 말 없이 그 자리를 지켜주는 존재.
그건 분명 사랑이고, 신앙이었습니다.
마무리: 말 없는 존재가 건네는 다정한 인사
성당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입니다.
주보를 나눠주는 손, 성가를 부르는 목소리, 꽃꽂이를 정리하는 손길들.
그 가운데 복실이는 아무 일도 하지 않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입니다.
복실이는 말을 하지 않지만,
언제나 같은 눈빛으로 이렇게 말해주는 듯합니다.
“괜찮아요. 오늘도 잘 오셨어요.
여기 와서 잠깐 쉬어가세요.”
하느님께서 사람의 모습뿐만 아니라,
복슬복슬한 네 발 달린 작은 친구의 모습으로도
우리 곁에 와 계실 수 있다는 걸
복실이는 매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도 복실이는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 먼저 가 앉아
우리를 기다리고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