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잊혀진 공간에서 피어난 믿음의 불빛
며칠 전, 친구와 함께 일본 시골 마을을 여행하다가 낯선 풍경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 적이 있습니다. 붉은 기와 지붕 아래 조용히 놓인 작은 건물 하나. 간판도 없고 인기척도 없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끌렸습니다. 친구가 조용히 말하더군요.“저기, 공소야. 천주교 신자들이 기도하는 곳이지.”
문득 마음이 먹먹해졌습니다. 예전, 외할머니 손을 잡고 동네 공소에 가서 묵주를 돌리며 눈을 감았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을까요. 그때는 그 조용한 공간이 왜 그렇게 따뜻하게 느껴졌는지 몰랐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죠. 고요함도 하나의 기도라는 것을.
1. 사제가 오지 않는 마을, 그러나 마음은 매주 성체 앞으로 간다
일본의 많은 공소들은 사제가 상주하지 않습니다. 매주 미사도, 성체도 없습니다. 대신 몇 명의 신자들이 정해진 시간에 문을 열고, 함께 기도하고 말씀을 읽습니다. 사제가 오지 않아도 그 자리는 결코 비어 있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더 가득 차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기다림으로.
그들은 말합니다. “성체를 모시는 그날을 손꼽아 기다린다”고.비록 매주 성체를 모실 수는 없어도, 그 간절한 갈망이 그들을 다시 공소로 이끕니다. 아무도 없는 예배당에서, 조용히 앉아 하느님을 향한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 그 시간이야말로 참된 성체와의 만남이 아닐까요?
2. 결핍이 키운 사랑은, 오래갑니다
도시에 살면서 우리는 많은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일요일이 되면 미사가 있고, 편하게 성체를 모시고, 사제의 말씀을 듣습니다. 하지만 공소의 신자들에게 그런 날은 한 달에 한 번도 오기 힘든 날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한 주도 빠짐없이 공소 문을 열고, 서로를 바라보며 함께 기도합니다.
어떤 날은 단 한 명만 올 때도 있답니다. 그래도 문은 닫히지 않습니다.한 사람이 앉아 기도하는 그 자리가, 바로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3. 조용히, 그리고 꾸준히
몇 달에 한 번, 사제가 찾아와 미사를 드릴 때면 공소는 작은 잔치처럼 활기를 띱니다. 성체를 모시는 그 짧은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들의 얼굴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눈을 감고 손을 모은 채로 성체를 입에 모시는 그 순간.어쩌면 우리는 그들의 눈물 섞인 감사 안에서 성체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배우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