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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공소의 침묵과 고요, 그 안에서 피어난 신앙

by mcstory7 2025. 5. 20.

일본의 시골길을 천천히 걷다 보면,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풍경 속에 아주 소박한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눈에 잘 띄지도 않고, 화려한 간판도 없으며, 종소리도 들리지 않지요. 하지만 그 안은 단순한 건물이 아닙니다. 그곳은 누군가에겐 하루의 시작과 끝을 기도로 채우는 자리이며, 하느님과 가장 깊이 만나는 성스러운 공간입니다. 바로 일본 천주교의 공소’(講所, こうしょ)입니다.

일본의 공소는 대부분 인구가 적은 외딴 시골 마을이나 산 속에 있습니다. 사제가 자주 머물 수 없는 환경이기에, 신자들은 스스로 기도 모임을 이어가며 신앙을 지켜냅니다. 어떤 곳은 주일마다 몇 명의 신자가 모여 묵주기도를 바치고, 어떤 곳은 한 노인이 홀로 공소 문을 열고 성경을 읽으며 그 자리를 지켜냅니다.

그 무엇보다 인상 깊은 건 그곳에 흐르는 침묵과 고요함입니다. 그 침묵은 단순히 말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안에는 말보다 깊은 기도가 있고, 소리보다 더 큰 신앙의 울림이 있습니다. 북적임도 없고, 웅장한 성가도 없지만, 바로 그 조용함이 이곳을 특별하게 만듭니다.

이탈리아의 성모 마리아상 사진

1. 침묵은 결핍이 아니라 기도의 형태

일본 공소의 고요함은 단순히 소리가 없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소란스러운 세상의 소음을 내려놓고, 하느님의 숨결에 귀 기울이는 시간입니다. 묵주기도의 구슬이 스치는 소리, 노인의 낮은 성경 낭독 소리, 기도서 한 장을 넘기는 손끝의 소리. 이 모든 것이 하나의 기도가 되어 침묵을 채워갑니다.

서구의 성당들이 화려한 제단과 합창으로 신앙을 표현한다면, 일본의 공소는 비움과 여백을 통해 하느님과의 관계를 표현합니다. 그것은 일본 특유의 와비사비(わびさび)’ 미학과도 닮아 있습니다. 있는 것을 더하지 않고, 없는 것에서 의미를 찾는 것. 이것이야말로 일본 공소가 보여주는 신앙의 방식입니다.

 

2. 신자 없는 성당, 그러나 살아있는 믿음

일본은 전체 인구 대비 가톨릭 신자 비율이 0.3%도 되지 않을 정도로 소수 종교입니다. 그만큼 공소의 존재 자체도 매우 드물고, 때로는 몇 명의 신자만이 전통을 이어갑니다. 그러나 신자의 수가 적다고 해서 그 신앙이 작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일본의 어느 해안 마을, 80세 노인이 매일 공소 문을 열고 혼자서 기도를 이어간다는 이야기는 일본 가톨릭의 침묵 속 저력을 잘 보여줍니다. 이 고요한 헌신이야말로 신앙의 본질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요?

 

3. 고요 속에서 발견하는 우리의 신앙

일본 공소의 침묵은 우리에게도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언제 마지막으로 고요 속에서 하느님을 만났는가?” 요란한 활동과 행사, 분주한 봉사 속에 때로는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고요는 하느님께 마음을 여는 문입니다. 침묵은 단절이 아니라 연결이며, 그 안에 하느님의 음성이 숨어 있습니다.

 

 

4. 마무리하며: 작지만 깊은 일본 공소의 울림

일본 공소는 말이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침묵 안에는 하느님을 향한 꾸준한 사랑, 조용한 신앙의 실천, 그리고 깊은 내면의 기도가 흐르고 있습니다. 숫자나 외형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믿음의 모습이 그곳에 있습니다.

작은 공소의 문을 여는 순간, 우리는 **‘신앙이란 결국 하느님 앞에서의 나 자신으로 서는 일’**이라는 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