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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골 공소의 사계절 풍경과 신앙의 일상 (공동체, 계절, 영성)

by mcstory7 2025. 5. 16.

화려한 제단도, 웅장한 성가도 없지만계절이 바뀌는 풍경 안에서, 한결같이 두 손을 모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도심의 성당이 바쁜 일상 속 신앙의 쉼표라면, 시골 공소는 느리지만 깊은 기도의 숨결이 깃든 공간입니다.
이 글은 사계절을 따라 살아가는 한국 시골 공소 공동체의 조용한 믿음과 따스한 일상, 그리고 그 속에 흐르는 하느님의 숨결을 기록한 이야기입니다.

성모 마리아 황금동상사진

 

1. , 꽃 피는 마당과 깨어나는 기도

매화가 피고, 산들바람이 볕을 데우기 시작하면 시골 마을 공소도 눈을 뜹니다. 공소 앞마당의 돌길 사이사이엔 민들레와 냉이꽃이 피어나고, 사람들의 발걸음도 조금씩 더 가벼워집니다.

겨우내 닫혀 있던 문을 여는 첫날, 어르신 몇 분은 작은 빗자루로 마당을 쓸고, 성모상 옆 화분엔 손수 키운 수선화가 놓입니다. 예절 시작 전, 회장님은 조심스럽게 묵주를 손에 들고 말합니다.
우리, 올 봄도 하느님께 잘 맡겨 봅시다.”

공소에는 신부님이 상주하지 않습니다. 예절은 평신도 회장님이 인도하고, 오래된 종이 성가책을 넘기는 소리와 작은 기도가 공소 안을 채웁니다.
농번기를 앞둔 이들은 바쁜 날이 다가오지만, 봄이 오는 첫 주일엔 반드시 모입니다. 기도 끝엔 직접 담근 된장국과 나물 무침을 나누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지난겨울 소식들을 풀어놓습니다.

이렇게 다시 모일 수 있음이, 봄보다 더 반갑네요.”
그 말 한마디에 공소는 생기를 얻습니다.

 

 

2. 여름, 땀과 햇살 속에 피어나는 정성

뜨거운 햇살이 마당을 덮고, 논에는 푸른 벼가 일렁입니다. 시골 공소의 여름은 땀으로 시작되고, 땀 속에서 기도가 익어갑니다.
무더위 속에서도 신자들은 약속한 시간에 공소로 모입니다. 누구는 밭일을 마치고 밀짚모자를 벗으며 들어오고, 누구는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은 뒤 성호경을 긋습니다.

선풍기 하나 돌아가는 좁은 공간이지만, 기도는 식지 않습니다.
하느님, 저희를 지켜주소서. 들판도, 집안도, 이웃도.”

특별한 날이면 마을 전체가 함께 하는 성모의 밤이 열립니다. 그 날만큼은 누구도 빠지지 않습니다.
할머니들이 만든 꽃바구니, 아이들이 색종이로 접은 성모상 뒤 배경, 그리고 촛불을 들고 노래하는 사람들. 모두의 손길이 모여, 작은 공소가 하느님의 축제장이 됩니다.

여름 밤, 촛불이 흔들릴 때 누군가는 조용히 속삭입니다.
이 마을을 성모님이 안아주고 계신 것 같아요.”

 

 

3. 가을, 감사로 물드는 계절

벼가 누렇게 익고, 공소 앞 감나무가 붉게 물들면, 신자들의 마음에도 감사의 기운이 가득 찹니다.
추수철이 시작되면 마을마다 바쁘지만, 공소에는 더 많은 손길이 닿습니다. 수확한 사과, 고구마, 들깨를 한 아름씩 제대 앞에 바치는 모습은 그 자체로 하나의 기도입니다.
이 열매, 하느님께 드립니다. 올 한 해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을엔 묵주기도가 더 깊이 울립니다. 어르신 둘 셋이 매일 저녁 공소에 나와 묵주를 돌립니다. 한 마디도 빠짐없이, 때로는 눈을 감은 채 조용히
그리고 마지막 기도를 마친 뒤, 창밖 노을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고, 하루가 다 갔네. 하느님도 수고 많으셨지요.”

소박한 농민의 기도는 때로 어떤 강론보다 깊은 울림을 전합니다.

 

 

4. 겨울, 조용한 기다림의 신앙

첫눈이 내리면 공소 앞 언덕길은 미끄럽고, 발길은 줄어들지만 공소는 결코 닫히지 않습니다.
벽난로 하나 없는 작은 공간에서 두꺼운 외투를 껴입은 어르신들이 손을 호호 불며 기도합니다.
몸은 춥지만, 마음은 따뜻해야지요.”

성탄절을 앞두고는 직접 만든 종이별과 손바느질로 만든 커튼으로 공소를 꾸밉니다. 구유상은 마을 청년이 자른 나무로 만들고, 아기 예수상은 할머니가 감싼 흰 천에 놓입니다.

성탄 밤, 작은 촛불을 들고 모두가 말없이 기도합니다.
하느님, 이 작은 마을에도 오셔서 감사합니다.”

공소의 겨울은 조용합니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에 담긴 기다림과 희망은 참으로 깊고 따뜻합니다.

 

 

5. 결론: 계절 속에 피는 믿음, 시골 공소의 진짜 신앙

시골 공소는 크지도, 편하지도 않지만, 그 안에 있는 기도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계절마다 바뀌는 자연의 모습처럼, 그들은 땀으로, 손으로, 마음으로 하느님을 찾아갑니다.

성가가 삐걱거려도, 무릎이 아파도, 멀리 본당 신부님이 오시지 않아도
공소 신자들은 여전히 두 손을 모읍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하느님은 먼 데 계시지 않습니다.
우리의 사계절 속에,
우리의 들판과 장독대와 주름진 손 안에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