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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공소에서 울려 퍼진 성탄곡 1. 눈발 속 공소, 다섯 명의 크리스마스창밖에는 눈이 소복이 내려앉고 있었습니다. 도시에서는 반짝이는 트리와 캐럴이 넘쳐나는 그날 밤, 작은 시골 공소 안에도 조용히 불이 밝혀졌습니다.신자 다섯 명.이 공소의 평일 미사나 주일예절에 참석하는 이들의 전부였습니다. 연세 지긋한 할머니 두 분, 동네 교사, 중학생 손녀, 그리고 공소 회장님.이 다섯 명이 모여 만든 성탄절 밤은, 세상의 어떤 대성당보다도 고요하고 깊었습니다. 아무도 축하해주지 않아도,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신자가 아니어도, 이 공소엔 하느님께 드릴 찬미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2. 캐럴이 아닌 기도로 불린 '고요한 밤'낡은 오르간은 오래전부터 멈춰 있었습니다. 성가대도, 악기도 없었지만, 회장님은 오래전 성탄미사에서 불렀던 노래를 기억하고 .. 2025. 5. 25.
시골 성당의 책꽂이에서 만난 1984년 묵주기도서 1. 오래된 책꽂이 앞에서 우연히 멈춘 발걸음시골 성당은 참 조용했습니다.나무 바닥을 밟을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그마저도 잠시 후엔 익숙한 정적이 되었습니다. 성당 안을 둘러보다가, 구석 책꽂이 앞에서 문득 발걸음이 멈췄습니다.낡고 바랜 책들이 줄지어 꽂혀 있었고, 그중에서도 유난히 빛이 바랜 갈색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습니다.손에 쥐자, 헝겊 표지가 바스락 소리를 냈고, 표지엔 금박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묵주기도서」 – 1984년, 가톨릭출판사표지를 넘기자마자 펜으로 적은 손글씨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어머니가 늘 들고 다니시던 책… 잃어버리지 말자.”이 짧은 한 줄에 가슴이 뭉클했습니다.누군가의 일상이 담긴 그 문장이, 그 순간 저에게 기도보다 더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2025. 5. 25.
미사 시간마다 피어나는 ‘이름 없는 꽃’의 기도 성당 제대 앞, 늘 그 자리에 놓여 있는 꽃 한 송이. 누군가 정성스럽게 꽂아두었지만, 이름표도, 설명도 없습니다. 특별히 화려하지도, 눈에 띄게 향기롭지도 않은 그 꽃은 이상하게도 매 미사 때마다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이 글은 **그 신비한 ‘이름 없는 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 누구도 몰랐던 작은 피움, 그러나 누구보다 깊었던 헌신한 신자가 조용히 성당 문을 열고 들어섭니다. 미사가 시작되기 한 시간 전, 그녀는 제대 앞에 앉아 작은 바구니에서 정성껏 꽃을 꺼냅니다. 장미도 백합도 아니고, 이름조차 알기 어려운 들꽃들이 고요히 그녀의 손을 따라 꽃꽂이로 재탄생합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소개도 되지 않았지만 이 일은 그에게 중요한 하루의 기도입니다.“신부님, 이 꽃은 아무도 이름을.. 2025. 5. 24.
공소를 지켜온 평신도 회장님의 수첩 1. 수첩 속 첫 장, 늘 같은 시작“오늘도 공소 문을 엽니다.”평신도 회장 김 회장님의 수첩은 항상 이 문장으로 시작됩니다. 이른 새벽, 바람이 차가운 날에도 그분은 먼저 나와 불을 켜고, 조용히 성체 앞에 앉아 기도하곤 하셨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낡은 노트지만, 이 수첩은 김 회장님에게는 공소의 하루를 여는 ‘열쇠’였습니다.그 속에는 평범한 날들이 하나하나 적혀 있습니다. 어떤 날은 청소를 도운 초등학생 이름이, 어떤 날은 아픈 교우의 안부가, 또 어떤 날은 비 오는 날 미끄러워 넘어질까 걱정한 어르신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그 기록들은 숫자도, 명예도 아닌 사람을 기억하는 신앙의 언어였습니다. 2. 사제 없는 공소, 모두의 손으로 지켜낸 믿음우리 공소에는 신부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에 모든 것을.. 2025. 5. 24.
시골 성당의 종소리가 전하는 마음의 평화 요즘 우리는 하루가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를 만큼 바쁘게 살아갑니다. 쉴 새 없이 울리는 알림음, 끊임없이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잠시라도 마음을 내려놓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 날들이 계속되던 어느 날,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싶어 한적한 시골 마을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잊고 지냈던 평화의 소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그 소리는 다름 아닌, 작은 시골 성당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였습니다.1. 마을 언덕 위, 마음을 멈추게 한 소리낯선 시골 마을을 걷던 어느 날 오후, 갑자기 내 귀에 들려온 종소리에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습니다. 그 소리는 요란스럽지도 않았고, 또시끄럽니도 않았습니다. 그 소리는 오래된 벽난로에서 은은하게 퍼지는 불빛처럼, 마음속 깊은 곳까지 스며드는 따뜻한 울림으로 느껴졌습니다.. 2025. 5. 23.
성당 벽에 남겨진 손글씨의 사연 바람에 낡은 벽, 그 위에 남은 작은 흔적어느 시골 마을.미사를 마치고 성당 뒤쪽 마당을 산책하다 우연히 마주친 풍경이 있었다.그곳은 오래된 창고처럼 보이는 성당 부속 건물의 외벽, 햇볕과 비에 바랜 콘크리트 벽이었다.처음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였지만 가까이 가니, 그 위에 희미한 연필 자국 같은 글씨들이 보였다.정리되지 않은 문장들, 삐뚤빼뚤한 글씨, 누군가의 마음이 그대로 묻어 있는 말들. 처음엔 장난인가 싶었지만, 한 줄 한 줄 읽다 보니그 글씨들이 단순한 낙서가 아니라, 기도이자 기록이자 삶의 흔적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1. 벽에 새겨진 기도들벽 한 귀퉁이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주님, 아버지가 아프지 않게 해 주세요. 성모님, 저희 집 좀 도와주세요.”그 옆에는 다른 누군가의 글씨가 겹쳐 .. 2025. 5.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