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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자 없는 공소에서, 그리움은 더 깊어집니다 – 잊혀진 공간에서 피어난 믿음의 불빛며칠 전, 친구와 함께 일본 시골 마을을 여행하다가 낯선 풍경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 적이 있습니다. 붉은 기와 지붕 아래 조용히 놓인 작은 건물 하나. 간판도 없고 인기척도 없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끌렸습니다. 친구가 조용히 말하더군요.“저기, 공소야. 천주교 신자들이 기도하는 곳이지.”문득 마음이 먹먹해졌습니다. 예전, 외할머니 손을 잡고 동네 공소에 가서 묵주를 돌리며 눈을 감았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을까요. 그때는 그 조용한 공간이 왜 그렇게 따뜻하게 느껴졌는지 몰랐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죠. 고요함도 하나의 기도라는 것을.1. 사제가 오지 않는 마을, 그러나 마음은 매주 성체 앞으로 간다일본의 많은 공소들은 사제가 상주하지 않습니다. 매주 .. 2025. 5. 19.
사제가 없어도 멈추지 않은 신앙 “신부님은 언제 오시나요?”몇 년 전, 강원도 깊은 산골에서 들은 질문입니다. 그 마을엔 사제가 오지 않은 지 벌써 5년이 넘었다고 했습니다. 처음엔 나도 놀랐습니다. 미사도 없고, 성체도 모시지 못하는데… 어떻게 신앙이 이어질까 싶었죠.그런데 그곳 공소에 머무는 동안, 나는 ‘기적’이란 단어를 실감했습니다. 신부님 없이도, 아니 어쩌면 신부님이 없기에 더 단단해진 공동체. 조용하지만 강한 믿음의 힘이 거기 있었습니다. 1. 누군가는 반드시 그 자리를 지킨다작은 공소 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깨끗하게 정돈된 제대와 정성스레 꽂힌 성경책입니다.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닙니다. 동네 아주머니 한 분이, 매일같이 와서 청소를 하고, 촛불을 켜고, 묵주기도를 준비합니다."신부님은 못 오셔도,.. 2025. 5. 19.
사라져가는 공소들, 잊지 말아야 할 그 자리의 기도 – 눈에 보이진 않아도, 여전히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신앙의 기억“여기, 원래 공소였어요. 어르신들이 모여 매주 예절도 드리고 성경공부도 하던 곳이죠.”마을 어귀에 남겨진 허름한 건물을 가리키며 어느 동네 분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습니다.문은 닫혀 있었지만, 그 안엔 누군가 오래도록 기도했던 자취가 느껴졌습니다.마치 아직도 누군가 자리에 앉아 묵주를 굴리고 있을 것 같은 그런 공간이었죠.1. 불이 꺼진 공소, 그러나 완전히 꺼지진 않았습니다예전에는 시골 어느 마을을 가도 하나쯤은 공소가 있었습니다.작은 간판 하나, 하얀 십자가, 그리고 늘 열려 있던 문.평일 낮에도 혼자 와 기도하던 할머니, 주일이면 예절을 준비하던 동네 아주머니들…그런 풍경이 참 익숙했죠.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젊은이들이 떠나고.. 2025. 5. 18.
바티칸의 시선 속에서 다시 조명되는 ‘공소’ – 교황청이 주목한 공소의 신학적 가치와 세계적 움직임“교회는 사제만으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신자들의 일상이 바로 교회입니다.”이 말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평신도의 역할을 강조하며 한 연설 중에 나온 내용입니다.그 안엔 단순한 위로 이상의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공소의 존재가 가진 교회 안의 의미와 사목적 가능성에 대해, 교황청은 지금 새로운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1. 공소는 ‘빈자리를 채우는 공간’이 아니라, 신앙이 숨 쉬는 자리입니다오래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공소를 이렇게 이야기하곤 했습니다.“신부님이 안 계시니까, 잠시 공소로 대신하는 거죠.”어쩌면 당연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이지만, 그 말 속엔 어딘가 모르게 공소가 '차선책'이라는 인식이 담겨 있었습니다.하지만 요즘 들어 .. 2025. 5. 18.
한국 시골 공소의 사계절 풍경과 신앙의 일상 (공동체, 계절, 영성) 화려한 제단도, 웅장한 성가도 없지만… 계절이 바뀌는 풍경 안에서, 한결같이 두 손을 모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도심의 성당이 바쁜 일상 속 신앙의 쉼표라면, 시골 공소는 느리지만 깊은 기도의 숨결이 깃든 공간입니다.이 글은 사계절을 따라 살아가는 한국 시골 공소 공동체의 조용한 믿음과 따스한 일상, 그리고 그 속에 흐르는 하느님의 숨결을 기록한 이야기입니다. 1. 봄, 꽃 피는 마당과 깨어나는 기도매화가 피고, 산들바람이 볕을 데우기 시작하면 시골 마을 공소도 눈을 뜹니다. 공소 앞마당의 돌길 사이사이엔 민들레와 냉이꽃이 피어나고, 사람들의 발걸음도 조금씩 더 가벼워집니다.겨우내 닫혀 있던 문을 여는 첫날, 어르신 몇 분은 작은 빗자루로 마당을 쓸고, 성모상 옆 화분엔 손수 키운 수선화가 놓입니다. 예절.. 2025. 5. 16.
베트남 산골공소에서 만난 신앙의 기적 1.길 없는 길 끝에서 만난 공소 하나베트남 북부, 라오까이(Lào Cai) 주 산악지대를 지나 울퉁불퉁한 진흙길을 따라 몇 시간을 걸으면, 지도에도 잘 나오지 않는 작은 마을이 나옵니다. 전기도, 인터넷도, 의료시설도 없는 그곳에서 유일하게 마을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이 하나 있었습니다.그것은 바로 ‘공소’, 사제가 상주하지 않는 시골 교우들의 기도처입니다.어쩌다 이 산골 마을까지 복음이 전해졌을까 하는 의문은 곧 감동으로 바뀌었습니다. 낡은 십자가, 손으로 그린 복음 말씀,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긴 묵주들…그 안에는 도시에서는 느끼기 힘든 순수한 신앙의 열기가 있었습니다.말없이 성모상 앞에 앉아 기도하던 할머니 한 분이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우리 마을엔 신부님이 1년에 한 번 오셔요. 그날은 마치 성.. 2025. 5.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