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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두렁 길을 걷는 순례자의 기도 우리는 가끔 복잡한 도시에서 벗어나 조용한 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합니다. 누구의 시선도, 소음도 없는 곳. 오로지 나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그러한 시간을 그리며...그런 마음으로 떠난 여행에서 나는 어느날 한적한 시골 논두렁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지도에조차 제대로 표시되지 않은 좁은 흙길이었지만, 그 길 위에서 나는 기도의 참된 의미를 다시 배웠습니다.어떤 화려한 성지도 아니었고, 특별한 성당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길을 걷는 동안, 나는 분명 하느님과 단둘이 걷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1. 마을 끝 논두렁에서 시작된 느린 발걸음햇살이 유난히 부드러웠던 봄날, 나는 작은 시골 성당에서 미사를 마친 뒤, 마을 너머로 이어진 논두렁 길을 따라 아무런 생각없이 걸었습니다.양옆으로 펼쳐진 논은 .. 2025. 5. 21.
일본 공소의 침묵과 고요, 그 안에서 피어난 신앙 일본의 시골길을 천천히 걷다 보면,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풍경 속에 아주 소박한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눈에 잘 띄지도 않고, 화려한 간판도 없으며, 종소리도 들리지 않지요. 하지만 그 안은 단순한 건물이 아닙니다. 그곳은 누군가에겐 하루의 시작과 끝을 기도로 채우는 자리이며, 하느님과 가장 깊이 만나는 성스러운 공간입니다. 바로 일본 천주교의 ‘공소’(講所, こうしょ)입니다.일본의 공소는 대부분 인구가 적은 외딴 시골 마을이나 산 속에 있습니다. 사제가 자주 머물 수 없는 환경이기에, 신자들은 스스로 기도 모임을 이어가며 신앙을 지켜냅니다. 어떤 곳은 주일마다 몇 명의 신자가 모여 묵주기도를 바치고, 어떤 곳은 한 노인이 홀로 공소 문을 열고 성경을 읽으며 그 자리를 지켜냅니다.그 무엇보다 인.. 2025. 5. 20.
아프리카 공소 성당에서 피어난 생명의 찬양 며칠 전,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지인을 통해 아프리카 어느 마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름도 지도에도 잘 나오지 않는 작은 마을. 그곳에, 흙벽으로 지어진 공소 성당 하나가 있다고 했습니다.전기도, 마이크도, 심지어는 의자도 부족한 그곳. 하지만 매주 주일이 되면 사람들은 그 조그만 성당으로 모여든다고 하더군요. 특별한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곳이 ‘살아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유일한 곳’이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왠지 마음이 뭉클해졌습니다.1. 소리 없는 땅에 울려 퍼지는 첫 번째 박수공소에 들어서면, 정적이 먼저 반깁니다.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손뼉을 칩니다. 따라오는 북소리, 그리고 이어지는 노랫소리.가난한 마을의 한복판에서 울려 퍼지는 이 찬양은, 마치 누가 그들에게 생명을 다시 불.. 2025. 5. 20.
성직자 없는 공소에서, 그리움은 더 깊어집니다 – 잊혀진 공간에서 피어난 믿음의 불빛며칠 전, 친구와 함께 일본 시골 마을을 여행하다가 낯선 풍경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 적이 있습니다. 붉은 기와 지붕 아래 조용히 놓인 작은 건물 하나. 간판도 없고 인기척도 없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끌렸습니다. 친구가 조용히 말하더군요.“저기, 공소야. 천주교 신자들이 기도하는 곳이지.”문득 마음이 먹먹해졌습니다. 예전, 외할머니 손을 잡고 동네 공소에 가서 묵주를 돌리며 눈을 감았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을까요. 그때는 그 조용한 공간이 왜 그렇게 따뜻하게 느껴졌는지 몰랐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죠. 고요함도 하나의 기도라는 것을.1. 사제가 오지 않는 마을, 그러나 마음은 매주 성체 앞으로 간다일본의 많은 공소들은 사제가 상주하지 않습니다. 매주 .. 2025. 5. 19.
사제가 없어도 멈추지 않은 신앙 “신부님은 언제 오시나요?”몇 년 전, 강원도 깊은 산골에서 들은 질문입니다. 그 마을엔 사제가 오지 않은 지 벌써 5년이 넘었다고 했습니다. 처음엔 나도 놀랐습니다. 미사도 없고, 성체도 모시지 못하는데… 어떻게 신앙이 이어질까 싶었죠.그런데 그곳 공소에 머무는 동안, 나는 ‘기적’이란 단어를 실감했습니다. 신부님 없이도, 아니 어쩌면 신부님이 없기에 더 단단해진 공동체. 조용하지만 강한 믿음의 힘이 거기 있었습니다. 1. 누군가는 반드시 그 자리를 지킨다작은 공소 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깨끗하게 정돈된 제대와 정성스레 꽂힌 성경책입니다.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닙니다. 동네 아주머니 한 분이, 매일같이 와서 청소를 하고, 촛불을 켜고, 묵주기도를 준비합니다."신부님은 못 오셔도,.. 2025. 5. 19.
사라져가는 공소들, 잊지 말아야 할 그 자리의 기도 – 눈에 보이진 않아도, 여전히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신앙의 기억“여기, 원래 공소였어요. 어르신들이 모여 매주 예절도 드리고 성경공부도 하던 곳이죠.”마을 어귀에 남겨진 허름한 건물을 가리키며 어느 동네 분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습니다.문은 닫혀 있었지만, 그 안엔 누군가 오래도록 기도했던 자취가 느껴졌습니다.마치 아직도 누군가 자리에 앉아 묵주를 굴리고 있을 것 같은 그런 공간이었죠.1. 불이 꺼진 공소, 그러나 완전히 꺼지진 않았습니다예전에는 시골 어느 마을을 가도 하나쯤은 공소가 있었습니다.작은 간판 하나, 하얀 십자가, 그리고 늘 열려 있던 문.평일 낮에도 혼자 와 기도하던 할머니, 주일이면 예절을 준비하던 동네 아주머니들…그런 풍경이 참 익숙했죠.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젊은이들이 떠나고.. 2025. 5. 18.